상속포기, 대리인이 때 놓치면 빚 다 껴안아야

김상훈 기자 / 기사승인 : 2020-11-19 16:5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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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보다 많은 빚…대리인이 시한 놓치면 상속포기 불가능해"

대법, 판례 유지…"미성년 대리인이 채무상속 제때 막아야"

▲제공=법원

 

부모라면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어 하지 빚을 물려주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형편이 어려워져 빚을 잔뜩 짊어진 채 사망하면 그가 진 빚은 고스란히 자식에게 대물림된다. 이를 막는 법적 조치가 바로 상속포기 제도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늦어서 상속포기를 못하는 경우가 가끔씩 있어서 법적 분쟁이 되곤 한다.

 

그렇다면 법적으로 볼 때 어린 시절 세상을 떠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보다 빚이 더 많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면 상속을 포기할 수 있을까?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동원 대법관)19A씨가 자신의 재산을 압류한 B씨를 상대로 낸 청구 이의 소송을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A씨는 만 6세였던 1993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재산을 상속받았다가 이후 소송에 휘말렸다. 아버지가 B씨에게 1210만 원의 약속어음금 채무가 있었는데, B씨가 약속어음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낸 것이다.

 

B씨는 이미 A씨 아버지의 사망 직후 1차례 승소 판결을 받았고, 시효 연장을 위해 2013년에 다시 소송을 내 이듬해 2월 승소 판결을 확정받았다.

 

아버지에게 재산보다 빚이 더 많았다는 사실을 모르던 A씨는 20179월 자신의 계좌가 압류된 것을 발견했다. B씨의 신청에 따라 채무자의 상속인인 A씨에게 채권압류·추심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이에 불복해 A씨가 낸 청구 이의 소송 1·2심은 모두 A씨의 손을 들어줬다. A씨가 상속받은 재산 이상의 빚을 변제하지 않는 한정승인을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민법(1019)은 상속인이 자신이 상속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점부터 3개월 안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 기간이 지났더라도 물려받을 재산보다 빚이 많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경우 다시 3개월 안에 한정승인을 할 기회가 부여되는데, 이를 특별 한정승인이라고 한다.

 

법적 구제장치 마련이 필요해

 

이 소송의 쟁점은 상속받는다는 사실 또는 빚이 재산보다 많다는 사실을 인식한 시점을 정할 때 본인과 법정대리인 중 누구의 인식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지였다.

 

기존 대법원 판례는 법정대리인이 기준이 돼야 한다고 봤다. A씨의 경우 대리인인 어머니가 상속 사실과 아버지의 채무를 알고 3개월이 지났다면 한정승인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12심은 A씨 본인이 아버지의 상속 재산보다 빚이 더 많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점을 들어 3개월 안에 특별 한정승인이 가능하다고 보고 선례를 뒤집었다.

 

이에 대법원은 "대리행위는 본인이 한 것과 같은 효력이 생기는 것이 원칙"이라며 "법정대리인(어머니)이 특별 한정승인을 할 수 없다면, 그 효력은 상속인 본인(A)에게 직접 미친다"며 기존 판례를 유지했다.

 

"법정대리인의 착오나 무지로 상속 포기 또는 한정승인을 하지 않은 경우 미성년자인 상속인을 보호하기 위해 별도의 제도를 마련하는 게 입법론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민유숙·김선수·노정희·김상환 대법관은 "상속인이 미성년인 동안 법정대리인이 기한을 놓쳤더라도 상속인이 성년에 이르면 직접 상속채무 초과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특별 한정승인을 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판례전문 변호사들은 상속포기와 관련한 재판이 제법 많다면서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입법 준비를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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